글
현직교사인 이승곤(경기 교문중 미술교사)·김연숙(서울 장훈고 국어교사) 부부는 방학 때마다 세 아이와 함께 세계를 누볐다. 2001년 중국을 시작으로 태국과 캄보디아, 이집트, 이탈리아 등을 거쳐 20여개 나라를 여행했다. 지난 2005년에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등을 돌며 발칸반도를 훑었다. 최근 출간된 ‘사교육비 모아 떠난 지구촌 배낭여행’은 이때의 기억과 기록을 담은 것이다.
“아이들이 다 크고 안정된 자리를 찾았을 때 떠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떠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아빠는 배낭을 멜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엄마도 여행계획을 세울 만큼 열정적이니까요. 아이들도 여행을 통해 자유롭게 걷고 생각할 수 있고요.”
여행에서 얻는 배움은 생각보다 컸다.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과정부터 학습이고 재미였다.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와 백과사전 등을 뒤져 목적지의 정보를 모았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작은 책자로 만들어 여행 기간 내내 요긴하게 들고 다녔다. 손때가 묻은 이 책에는 여행 중간 중간 기록한 메모들이 추가돼 알짜 정보들로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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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교문중 미술교사 이승곤씨 |
“가장 큰 성과는 떠날 수 있는 아이들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조금의 고생은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줄 알잖아요. 다른 세계를 거닐며 내 나라 내 땅을 생각하고, 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데 감동이 있잖아요. 또 가족이 추억의 공통분모를 가졌다는 것도 큰 소득이죠. 먼 훗날에도 ‘그 때 그 숙소 괜찮았는데’ 라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있으니까 좋죠.”
그동안의 여행을 자발적인 고행(苦行)이자 난이도 높은 유희(遊戱)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큰딸 미로는 유니세프 등의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꿈을 키우고 있다. 쌍둥이 아들 바로는 발칸반도에서 본 고즈넉한 도시풍경과 정신없는 서울의 모습을 비교, 우리나라 간판의 문제점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들 부부는 “여행 때문에 생긴 안목”이라며 “진정한 의미의 사교육은 여행”이라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출간한 책 표제에 사교육을 전면에 내세운 건 무슨 까닭일까. 상업적인 목적이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답은 솔직했다.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어요. 자극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나치게 사교육에 의존하는 우리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면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아름다운 제목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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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훈고 국어교사 김연숙씨 |
사교육 문제라면, 그동안 교사로서 부모로서 할 말이 많았다. 초라해진 공교육과 달리 사교육 시장은 갈수록 비대해졌다. 이씨가 재직 중인 학교의 한 학급 40명 중 30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다. 무려 70%의 비율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여행을 다녀도 되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도 짐을 꾸릴 용기를 냈던 데는 딸 미루의 역할이 컸다.
“미루는 부족한 과목만 선택해서 학원을 다녔어요. 그것도 몇 달이었어요. ‘배우는 게 없다. 안 해도 되는 공부를 한다’고 학원가기를 그만뒀어요. 재미있는 건 성적이 조금 떨어져도 그 걸 더 좋아하더라고요. ‘이번 성적은 진짜 자기 실력’이라고 뿌듯해했어요. 대학에 들어가면 동생들 공부도 책임진다고 하니 고맙고 기특하죠.”
사람들은 무슨 돈으로 여행을 가냐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경제적으로 환산해 봐도 여행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인 두 아들은 각각 25만원을 내고 학원을 다닌다. 만약 딸아이가 학원을 다녔다면 매달 30만원이 추가로 든다. 모두 합치면 80만원. 1년이면 약 1000만원이 사교육비로 쓰인다. 이들은 ‘문제해결력’이 아닌 ‘문항해결’만 하는 사교육에 드는 비용치고는 아무래도 과하다는 것이다.
“요즘 교육은 어떻게든 밟고 일어서는 것만 가르치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에게 어떤 가치를 심어주기 보다 경쟁을 강조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죠. 밤늦게까지 가족도 없이, 감수성과 꿈을 키울 사이도 없이 학원에서 학원으로 돌아다니는 현실은 옳지 않잖아요.”
이승곤·김연숙씨 가족이 20일 동안 여행을 하며 쓰는 돈은 600~700만원이었다. 정보를 수집해 발품을 팔아 항공권을 예약하고 공항 노숙을 자청했다. 현지에서 민박을 하고 끼니를 만들어 먹었다. ‘시장 구경’이 아닌 ‘시장 체험’을 하며 고생을 사서 했다. 부부는 이런 과정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깨우침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공부를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을 위한 공부’를 위해서는 아깝지 않은 비용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 부부가 바라는 교육은 어떤 것일까. 이승곤씨는 교육(education)의 어원을 소개했다.
“교육은 밖으로부터 들어 아는 게 아니라 자기 안으로부터 배움의 텃밭을 일구는 것이라는 뜻이거든요. 스스로 행동하게 하고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놀라운 게 여행을 다니면서 다른 어떤 나라에도 사교육 시장이라는 게 없더라고요. 이건 분명히 우리가 잘못된 지형을 짜고 있다는 거겠죠.”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 김씨는 “몸이 근질근질 거린다”며 “아이들도 제각각 방에 걸린 세계지도를 보며 다음 여행코스를 짜고 있을 것”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fr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032101341&code=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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